처음 포도밭을 사서 집이 지어졌을땐 단칸방이었습니다.

  비오는 날이면 어머니께서 부엌에서 밥상을 들고 방으로 오시면 밥상에 빗물이 흠뻑있는 그렇게  

  달랑 부엌하나 방 하나 그런 집이었습니다.

 

  오른쪽으로 보면 지프차와 우리 삼형제가 있네요.

  아버님께서 의용소방대에서 활동을 하셨기 때문에 가끔 소방서 차를 타고 집에 오셨습니다.

 

 

  집앞에 지붕을 길 게 만들어 비를 맞지 않게 증축이 됬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방에 누워서 보면 스레트 지붕에 라면상자들이 천장에 붙어 있었습니다.

  여름이면 그래서  뜨거웠지만  어렷을땐 천장에 붙어있는 삼양라면, 새우깡등등  그런 여러 상자들을   보며 재미있게 놀았 습니다.

 

 

  집을 증축했는데 사방으로 뒤쪽은 복도겸 창고와 욕실, 오른쪽은 우리방과 다락방, 왼쪽은 식당과

  주방,  앞쪽은 거실 그렇게  사방을 증축하고 지붕을 새로 올려서 제대로 된 집이 완성되었습니다.

  가장 좋은건 다락방이 2개 생겼다는 것이었는데 다락방의 추억이 참 많습니다.

 

  집을 고칠 때나 증축하실 때면 주로 아버님이 직접 하셨습니다.

  아버님은 목공, 철근공, 토목기사, 페인트공.....  많은  일을  혼자 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아버님께서는 우리를 일하는 곳으로  불러서 일하는걸 보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했는지

  알아야 어디에 뭐가 묻혀있는지 알아야 우리가 나중에 할수 있다고 하시며 구석 구석을

  보여 주셨고 먼 훗날 2층집으로 올릴걸 대비해서 미리 기둥을 세우고 철근을 자르지 않고 안쪽으로

  접어 두셨습니다.

 

 

  완성된 집은 집앞에  태양교라는 다리가 있고 연못에서 물고기들이 놀고 동산에서는 잘은 냇물이

  졸졸 흐르는 그런  집이 되었고 아버님은 수년을 정원 가꾸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셨습니다.

 

  국수를 묶어서 낚시도 하고 연못 청소 때엔 연못에  맑은물 받아놓고 그안에 들어가서 물고기와  

  물장난을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님께서  줄넘기를 사다 주셨는데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자 몸이 풀리지

  않은 잠결에 줄넘기를  하다 그만  허리를 다쳤습니다.

 

  병원에서 물리치료도 받고, 수술울 하느니 않하느니 병원에서 논란을 거듭하고, 별별 약을 쓰고  

  침맞고, 쑥뜸에,   민간요법에....  않해본게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느날 굿을 했는데 점장이 말이 집에들어오는 모든사람들이 집안의 허리위를 지나서 그런데

  그 허리 부분이 다리라고 했고  곧 연못은 메워지고 다리는 철거되었습니다.

 

 

  국경일이면 아버님께서 꼭 우리에게  태극기를 계양 하도록 했는데 꼭 국경일 뿐이 아니고 평일에도

  국기를 계양 하도록하셨고  그때 6시인가(?)  

  그때는 길가던 사람들이 모두 멈추고 국기 하강식을 했는데 난 집에있는 국기 계양식을 하느라고

  카세트를 들고 국기대 밑에가서 애국가를 틀고 국기 하강식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동산에 파초와 감이 주렁 주렁 열린 감나무가 보입니다.

  파초잎 하나 꺽어서 비오는날이면 원주민 처럼 우산을 대신해서 이곳 저곳 놀러 다니던 기억들....

  또 길가는 사람들 어둡다고  해지면 꼭 가로등을 켜라고 하셨는데  우리집 가로등은  아주 높고

  길쪽으로 향해서 동네 사람들이 고마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큰형의 허리문제로 다리는 철거되었고 그뒤엔 잔디밭이 조성되었습니다.

  처음엔 분홍색이 가득한 꽃잔디였다가 나중엔 잎이 얇고 고운 금잔디 동산이 만들어 졌습니다.

 

  다리가 없어졌지만 그래도 집을 드나들땐 다리가 있던 그 자리의 길을 이용했지만....

  큰형의 허리는  낳았습니다.

 

  그러니 점장이의 말은 아무래도 신빙성이 없었다고 보여지지만 그래도 잔디 동산은 나름대로

  푸른 녹음이나  가을이면 갈색의  잔디밭을 볼 수 있는 편안한 곳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 공무원 생활을  접으시고 신문 사업을 하시면서 국경일을 제외하고 평일엔 신문사 깃발이   계양대를 차지했고 동산과 진입로는 잘 가꾸어진 정원과 자연석 자갈길이 만들어 졌습니다.

  

 

  동산은 날로 푸르러져 갔고 녹음이 짙을 때나 온  집안이 하얀 목련으로  덮일 때면  동네 사람이나

  멀리서 까지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잔디 밭엔  연분홍의  철쭉이 한 그루씩 심어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사진을 찍은 사람이 참 많은데  내사진은 없습니다.

 

 

  아랫쪽 정원에는 토끼굴을 만들었습니다. 토끼굴이 2개 보이네요.

  정원에 토끼와 오골계가 놀고 있는 아름다운 정원이 되었는데 토끼들이 동네에 나가서 배추며 무며...   농작물에 비해를 입혀서 동네 아이들과 함께 동네 구석 구석을 누비며 토끼 몰고 다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랫쪽 정원에선 토끼와  오골계가  어울리는 정원이  되었고 돌아 다니면서 오골계 알을 주워 오기도   하고 어느땐 오골계 요리를 할땐 고기랑 뼈가 검다는 이유로 손도 대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원이  넓다보니 가꾸는 일도  쉽지 않았는데  정원 사이 사이 돌아 다니며 풀 뽑는 일을 왜 그렇게

  싫어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원엔  정원수  외에도  측백나무, 철쭉, 목련 등의 묘목을 키우셨고  한약재인  작약을  키우셨는데

  분홍빛 작약꽃이 참 예뻣습니다.

  그외에도 마늘이나 생강, 배추, 무, 상추, 토마토, 딸기..... 많은 것들을 키우셨습니다.

  어려서부터 이런 환경이 지금에 와서 보면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울타리는 반정도가 탱자나무 였는데 여름이면 탱자 나무를 회초리를 들고  다니며 탱자나무를

  예쁘게 가지 치기하고  난 장난끼가  발동하여 긴 쇠파이프에 못쓰는 부엌칼을 붙들어 매서

  관우가 사용하는   청룡검을 만들어 가지치기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탱자나무 가지치기 하면서 나비의 유충을 보기도 하고  벌레들 분비물을 모아서 병에 담아  

  검은 탕약을 만드는 놀이도 했습니다.

 

 

  군대에 갔다 왔을땐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집에 않좋은일도 있었고 아버님꼐서 나이도 드셨고 해서 관리가 되지 않는 상황이 다가왔습니다.

  정원엔 잡초가 성하게 우거졌고  지붕의 색은  바래졌고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너무 많고

  또 그런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집이 아닙니다.

 

  아버님께서 또 우리모두 애착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었이든 영원할 수는 없는 것이고 내가 느끼는건 누구에게나 어릴적에는 자연과 더불어

  지낼수 있는 것이  좋으며 아이들에게는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기회도 많이 줘야하고,

  또 어렸을 때의 환경이 어른이 되어서 인성에 아주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이란걸 마음 깊이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