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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름으로 김제읍 검산리 대검산이란는 마을입니다. 어렷을적 기억으로 아주 북적이고 활기가 넘치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마을 뒤쪽 높은 곳엔 두부를 만드는 공장이 있었는데 말이 공장이지.... 지금 생각하면 흙벽으로 지어진 그런 마당이 있는 가정집에서 가내수공업으로 꾸려가는곳 입니다.
그곳에서 콩비지를 받아다가 가축에게 먹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도시에서 콩비지 찌게를 찾아가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됬지만, 내겐 그때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가물 가물하게 있습니다.
내가 태어난 집은 점석이 아저씨라는 분의 집이었는데... 작은집에 세들어 살았지요. 비가 내린 다음날이면 마당에 빗물자국을 따라 모래장난도 많이하고 마당을 파서 흙장난 했었는데 나중에 우리 때문에 주인집 아저씨가 뭐라 하셔서 아버지께서 곤란 했었다는걸 알았습니다.
아버지께서 큰자루에 학교빵을 한자루 가득 가져다 주셨던 기억.. 그빵을 설탕물에 찍어 먹던 기억들 바로 이집입니다. 점석이 아저씨네집.....
지금은 한적하고 인기척조차 없는 초라한 집입니다. 집앞에 마을 공동 우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스팔트가 깔렸고 미나리깡도 있었는데 지금은 논이 되었습니다.
옆집은 시멘트 담장이지만 어렸을땐 개나리나무 사철나무 그런 울타리였습니다. 그집은 선태네 집이라고 합니다.
그집에 형과 동갑네기가 있었는데 김선태 그리고 그동생은 나와 동갑내기인 김선희라고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습니다 울타리 사이로 들락거리며 놀던 기억이 생생 합니다.
선태네 집은 부자집이고 아주 큰 창고가 있었는데 그창고에서 곰팡이 냄새를 맞으며 축축하면서도 서늘하고 시원한 그런, 창고에서 놀던 기억이 있습니다.
바로 이집입니다. 선태네집....
처음엔 검은 기와집으로 기억하는데 초등학교 때인지 아니면 중학교 때인지.... 집을 새로지었는데 지금까지 녹색지붕이 그대로 마을입구에 남아 있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개천이 있는데 그땐 저 다리위에서 동네 형들이 물로 뛰어들기도 하고 물놀이도 하고 물속에서 검은 말조개 잡아서 고무신에 담아 집에 왔던 기억도 있습니다.
학교다닐 때는 그조개를 집에 연탄물에 구워먹던 기억도 있습니다. 이젠 그 개천이 사진처럼 녹슨 철재난간이 있는 다리에 그저 작은 농수로 정도로 보일 뿐입니다.
그땐 아주 길고 넓고 깊은 자건거 타고 건너면서 다리 밑을 보면 아찔한 그런 난간도 없는 다리였는데 이젠 작은 농수로 입니다. 내가 컷는지 다리가 작아졌는지......
마을 앞쪽엔 모종이라는게 있습니다. 모종앞엔 우리친구의 아버지께서 하시는 이발소가 있었고.... 파란 플라스틱 물조리개를 사용하고 가죽에 칼을 갈아 면도하는 그런 시골 이용원... 그옆으론 방앗간이 있었습니다.
명절이 돌아오면 떡을 하느라 방앗간은 텅텅텅 불을 때서 돌아가는 엔진이 있고 구멍뚤린 흙벽에선 불이 펑펑 나왔습니다
솔방울이며 나무같은 것으로 불을피워 떡을하는 그런 방앗간 이었는데.... 그앞의 모종에선 어른들이 큰 나무밑에 있는 평상에서 한가롭게 이야기를 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바로 이곳입니다. 지금은 버스정류장이 생겼는데... 그땐 시내버스는커녕 시내에서 차를 보는 것도 흔한일이 아니었고 그땐 바퀴 세 개달린 삼륜차 그런 차들이 동네에 어쩌다 들어왔고 그차를 신기해서 따라 다닌 기억이 있습니다.
모종에 있는 나무는 아직도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아주 큰나무였는데 아직도 그대로 인 것 같습니다. 어린나무는 빨리 크지만 고목은 그리 빨리 자라는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니면 고목은 말 그대로 자라지 않고 세월을 지키며 현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고목이 아닌가 ? 30년이면 강산이 3번 변하는게 맞나 봅니다.
옛날엔 호남잠사라는 큰회사가 있었습니다.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회사인데 그옆으로 진흙탕 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서 산속으로 들어가면 나지막한 산들이 있었고 그산에 자전거를 타고 오솔길을 누비며 다니던 기억들과 버섯을 따오면 어머니께서 못먹는거라고 버리시던 기억들...
그길을 따라 초등학교 소풍도 다녔었고 그 산속에는 수원지라는 저수지가 있는데 식수원으로 사용되는 곳이어서 청원경찰이 지키고 있고 낚시같은 것을 못하게 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아주 넓고 깊은 곳이었는데..... 인적도 거의 없는 산속의 저수지였습니다.
지금은 왕골이 가장자리에 무성하고 저수지 주변에 산책길이 깔끔하게 깔려 있습니다. 시민 체육공원이 되어서 한가롭게 거니는 사람들이 있고... 진입로는 4차선에 양옆은 인도까지 깔려있는 대로가 있어 차를타고 사람들이 다녀가는 곳이 되었습니다.
큰 시민 운동장이 옆으로 건설되고 아주 근사한 체육공원이 되었는데 지금은 수원지라고 그러면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고 이근처 저수지가 어디에요? 라고 해야 사람들이 알아 듣습니다. 그땐 누구나 수원지라고 했는데......
난 기억을 더듬어 호남잠사 옆길을 찾았지만 이젠 수원지 바로 옆에 대로가 생겨 버렸고 호남잠사를 기억하는 사람들 조차..... 나이 많은 몇몇 어른들 빼고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수원지 가장자리엔 취수구가 있습니다. 어렸을땐 그게 취수구인지도 모르고 그저 무슨 전망대라고 생각했습니다.
청원 경찰이 수원지를 살펴 보기 위한 그런 전망대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것이 수원지에서 물을 취수해서 정수장으로 보내기위한 취수구 라는걸 알죠.
취수구 옆쪽으로 지금은 아카시아 나무가 무성해서 사람들이 다니기 조차 힘든 길이 되었는데 초등학교 시절엔 그길을 따라 소풍을 가는 길이었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길도 좁아졌고 아카시아도 무성하고 나무를 치우면서 다녀야 되고 취수구 옆쪽으로 예비군 사격장이 있었는데... 집에 있다가 빵빵 하는 총성이 들리면 자건거를 타고 그곳에 달려갔습니다.
발사된 실탄을 호미나 나뭇가지를 이용해 목표물 뒤를 파보면 찌그러진 실탄이 박혀있습니다. 그실탄을 집에 가져와 깡통에 넣고 연탄불위에 올려놓습니다. 혹시나 터질까 무서워 크고 무거운 무쇠솥 뚜껑을 덮어놓고 기다리면 깡통안엔 빤짝반짝하는 납물이 출렁거립니다.
찰흙을 반죽해서 모양을 만들고 거기에 납물을 부으면 요즘 말하는 부조 형식의 미술품(?) 장신구 같은게 되는데 그걸 벽에 걸어놓고 즐겼지요.
지금은 사격장은 없고 그 자리는 산속 작은 텃밭이 되었고 그뒤로는 차가 쌩쌩달리는 대로가 있습니다.
취수구에 위는 지금도 그때부터 있던 녹이슨 쇠뚜껑이 있습니다. 10 여년이 지난 세월을 눈비 다 맞으며 그모습 그대로 자기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 격세지감입니다.
그땐 김제동국민학교라고 했습니다. "동"이라는 글자를 도식화 해서 만든 파란색을 명찰을 달고 학교에가야 하고 그게 없으면 교문에서 주번한테 걸려서 애를 태우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학교앞에 향나무는 온전한데 학교건물은 다시 지어졌습니다. 학교앞 향나무는 미술시간 항상 그려지는 단골 대상물 이었는데 크레파스로 그리는 그림에 선생님은 어떻게 모두 녹색이냐고 잘보면 검은색, 녹색, 연두색 그런게 보일꺼라고 잘 보면서 그리라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운동장 한편엔 히말라야시다(?) 라는 침옆수 나무가 있는데 원래는 그런 나무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그나무 주변에 골을 파고 인분을 부었습니다. 물론 잘 자라라고 그랬겠죠.... 그런데 그때 거의 많은 나무가 죽었습니다.
그땐 그런걸 몰랐겠죠... 어른들도.... 지금 남아있는 두 그루의 나무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 전광섭 선생님이 나한테 재배부장이란 직함을 주면서.. 그나무와 주변의 잔디를 잘키우라고 그래서... ㅎㅎㅎ 학교 끝나고 늦게까지 남아서 호스 연결해서 물주고.... 그러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좁아졌습니다.
지금도 무슨 나무인지 모르겠는데 운동장 아랫편에 한가운데에 보면 그때말로 낙하산 나무라는것이 있었는데, 낙하산 나무에는 씨앗에 날개가 달려있어서 하늘에 날리면 뱅글 뱅글 돌면서 천천히 내려오는 그런 열매가 열리는 나무인데 그열매를 가지고 게임도 하고 헬리콥터라고 놀았던 기억이 있는데 우린 그나무를 낙하산 나무라고 그랬습니다.
그작은 운동장에서 운동회 할 때면 청군, 백군모여 앉아서 깃발을 흔들며 청군 이겨라~!! 백군이겨라~!! 이런것도 해야하고 한가운데서 차전 놀이도 해야하고 앞쪽에선 부모님들 선생님들 그늘막치고 앉아 구경도 해야하고....
장난감이며 불량식품, 밤, 감, 계란, 장난감, 아이스크림 팔던 장사들...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운동장에 모여서 그런 행사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학교옆은 높은 담이 있고 담장밖에는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습니다. 그 옆으론 신화공장이라는 큰 공장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곳은 정부미를 도정하는 일과 쌀겨를 가지고 요즘말하는 튀김용 기름을 짜는 미강유라는 기름을 만드는 공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공장은 지금도 그대로 양철 지붕을 하고 있지만 길쪽으로 입구를 내고 알뜰 백화점이란 중고 가전 제품을 파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공장 옆 구멍가게에서 불량 식품을 사먹었던 기억과 그 높은 담장을 몰래 목숨 걸고 넘어 갔다가 선생님이나 주번한테 걸려서 벌받은 기억도 생생한데....
담장은 그저 1미터 남짓한 그런 담장이 남았고 반은 스텐레스 울타리로 변했습니다. 그땐 그 1미터가 어찌나 높은지 벽에 구멍을 뚫고 그걸 밟고 올라서야 담장밖이 보였는데.....
학교 뒷길에는 일제 시대때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그런 집이 있습니다. 어쩌다 그 앞에서 영화 촬영을 했는데 대문 앞에 일력거가 한 대 있고 안에서 깨끗한 옷을 입은 양반 같은 사람이 나와서 인력거를 타고 떠나는 그런 장면인데 집안은 못들어가게 해서 그안에서 어떤 내용의 영화를 찍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앞쪽은 학교 쓰레기 소각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깨끗한 시멘트 바닥에 자동차가 서있는 주차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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